[연평도 사격훈련] 가장 길었던 하루…연평도는 다시 '불안한 침묵'
20일(한국시간)은 연평도 주민들에게 가장 긴 하루였다. 군 당국의 포사격 방송 주민 대피 포사격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 연평도 하루는 그렇게 지났지만 주민들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 들어갔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전 8시쯤 군 당국은 '오늘 사격을 실시할 예정'이란 내용의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주민들의 표정은 굳어졌고 대피소로 들고 갈 짐을 꾸리느라 부산해졌다. 기자가 중부리 노인정 옆의 24-2A대피소에 들어서자 주민과 보건소 직원 등 12명이 먼저 대피해 있었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대피소로 피신한 주민들에게 방독면을 하나씩 지급했다. 일부 방독면에는 '제조일자 1983년. 유효기간 6년'이란 글자가 선명했다. 얼굴에 뒤집어쓴 채 정화통 흡입구를 막아도 숨 쉬는 데 이상은 없었다. 불량이었다. 정화통을 막으면 공기가 차단돼야 정상이지만 제조한 지 20년이 넘은 방독면이 제 기능을 할 리 없었다. 그래도 주민들은 방독면을 손 닿는 곳에 놓고 떨어뜨리지 않았다. #. 낮 12시30분쯤 대피소 안에 다시 긴장감이 흘렀다. "오후 1시부터 사격을 실시하니 즉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기 때문이다. 군경이 다시 대피소의 철문을 굳게 닫는 순간 대피소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다. 휴대전화마저 완전히 불통되면서 대피소는 침묵에 빠졌다. 하지만 오후 1시가 넘어도 포 사격 소리가 들리지 않자 주민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포를 쏘려면 빨리 쏴야지 이렇게 피를 말려서야 어떻게 사느냐"는 소리였다. #. 오후 2시30분. '쾅' 하는 첫 포성이 들렸다. 2~3초 뒤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멀게 섬 공기를 갈랐다. 처음 10발 정도의 포성은 10초쯤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대피소 안에서는 천둥소리와 구분하기 어려웠다. 주민들은 포성 크기에 따라 박격포인지 자주포인지 알아맞혔다. #.오후 3시20분쯤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포성마저 멈췄다. 주민들은 다시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10분쯤 기다리던 한 주민이 "이제 끝났나 보다"며 담배를 물고 나가는 순간 '드르르륵' 하는 굉음이 마을 뒷산 너머에서 들려왔다. 2~3초 후에는 '쿠구구궁'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서쪽 바다 상공에서 내리꽂는 폭발음이었다. 포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다 보니 주민들은 포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북한의 대응사격으로 오인했다. 주민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피소는 순식간에 적막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주민을 통제하던 해병 부사관이 "우리 측 방공포 진지에서 쏘는 벌컨포 소리"라고 말하자 주민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오후 6시30분. '추가 도발 가능성이 없어 대피령을 해제한다'는 군 무전 교신이 전해졌다. 해병이 육중한 철문을 열어젖히자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깥 공기가 방공호를 엄습했다. 낮보다 더 자욱해진 안개 때문에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갔고 연평도는 다시 불안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연평도=유길용 기자